언설아사(言說我事)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'언설(言說)의 아사(我事)'로, '언설(言說)에 대한 아상사(我相事)' 또는 '언설(言說)에 대한 아소사(我所事)'를 뜻하는데, 《대승아비달마잡집론》에 따르면 후자의 의미이다. 즉 언설을 '내 것[我所]'이라고 계집(計執)하는 것 즉 언설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여 언설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.[3][4] 언설(言說)은 말 즉 언어를 뜻한다. 불교에서는 언어의 구성요소 또는 언어 그 자체를 전통적인 용어로 명신(名身: 낱말, 특히 명사) · 구신(句身: 문장) · 문신(文身: 음소 또는 글자)이라고 하며, 이 중에서 명신은 명사적 단어로서의 상(想, saṃjñā)을 뜻한다. 또한 상(想)은 표상작용의 마음작용을 뜻한다. 명사적 단어로서의 상(想, saṃjñā) 즉 명신(名身: 낱말, 특히 명사)은 표상작용인 상(想, saṃjñā)의 마음작용에 의해 생겨나는 표상 또는 개념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. 특히, 대승불교에서는 명신(名身: 낱말, 특히 명사)은 상(想)의 결과물, 즉 표상들 즉 개념들의 집합이라고 본다. 따라서 명신(名身: 낱말, 특히 명사) · 구신(句身: 문장) · 문신(文身: 음소 또는 글자), 즉 언어는 사물의 자성을 분별(分別)하는 것 즉 개념화 작용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 상(想)의 마음작용과 분리된 별도의 실체가 아니라고 본다. 이런 측면에서, 언설 즉 언어는 곧 상(想)의 마음작용을 의미한다.[5][6][7][8] 그리고 상(想)은 5온 가운데 상온에 해당한다.[9][10][11][12] 간단히 말하면, 언설아사(言說我事)는 5온 가운데 상온을 '내 것[我所]'이라고 생각하여 집착하는 것[計執]을 말한다.[3][4] 즉, 뛰어난 생각(개념), 독창적인 생각(개념), 마음이 쏠리는 생각(개념)과 같은 특정한 생각(개념)을 '내 것[我所]'이라고 여겨서 그 생각(개념)에 집착하는 것, 즉 그 생각(개념)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.
언설아사(言說我事)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'언설(言說)의 아사(我事)'로, '언설(言說)에 대한 아상사(我相事)' 또는 '언설(言說)에 대한 아소사(我所事)'를 뜻하는데, 《대승아비달마잡집론》에 따르면 후자의 의미이다. 즉 언설을 '내 것[我所]'이라고 계집(計執)하는 것 즉 언설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여 언설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.[3][4]
언설(言說)은 말 즉 언어를 뜻한다. 불교에서는 언어의 구성요소 또는 언어 그 자체를 전통적인 용어로 명신(名身: 낱말, 특히 명사) · 구신(句身: 문장) ·문신(文身: 음소 또는 글자)이라고 하며, 이 중에서 명신은 명사적 단어로서의 상(想, saṃjñā)을 뜻한다. 또한 상(想)은 표상작용의 마음작용을 뜻한다. 명사적 단어로서의 상(想, saṃjñā) 즉 명신(名身: 낱말, 특히 명사)은 표상작용인 상(想, saṃjñā)의 마음작용에 의해 생겨나는 표상 또는 개념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. 특히, 대승불교에서는 명신(名身: 낱말, 특히 명사)은 상(想)의 결과물, 즉 표상들 즉 개념들의 집합이라고 본다. 따라서 명신(名身: 낱말, 특히 명사) · 구신(句身: 문장) · 문신(文身: 음소 또는 글자), 즉 언어는 사물의 자성을 분별(分別)하는 것 즉 개념화 작용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 상(想)의 마음작용과 분리된 별도의 실체가 아니라고 본다. 이런 측면에서, 언설 즉 언어는 곧 상(想)의 마음작용을 의미한다.[5][6][7][8] 그리고 상(想)은 5온 가운데 상온에 해당한다.[9][10][11][12]
간단히 말하면, 언설아사(言說我事)는 5온 가운데 상온을 '내 것[我所]'이라고 생각하여 집착하는 것[計執]을 말한다.[3][4] 즉, 뛰어난 생각(개념), 독창적인 생각(개념), 마음이 쏠리는 생각(개념)과 같은 특정한 생각(개념)을 '내 것[我所]'이라고 여겨서 그 생각(개념)에 집착하는 것, 즉 그 생각(개념)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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